dylayed

개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승진 안할 용기

나만의 속도, 나만의 길

구글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옆자리에 앉은 시니어 개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15년 전 시니어 엔지니어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같은 직급이었습니다. 내년 은퇴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시니어 개발자는 보통 5-10년 차에 도달하는 직급입니다. 그런데 이 동료는 시니어가 된 후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승진 기회가 없어서는 아니었습니다. 평판도 좋았습니다. 어느 날 호기심 많은 저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는 사람 문제보다 코딩 문제 푸는 게 더 재미있어. 저기 저 스태프 개발자를 봐봐. OKR이니 뭐니 미팅만 하느라 코딩할 시간이 하나도 없어 보이잖아.”

흥미롭게도 회사는 그의 선택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만년과장’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니어 개발자로서 기대되는 성과를 충족하는 그에게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늘 치열하고 대담하게 경쟁하는 인재도 당연히 있었지만, 평범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과도 함께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와 제도가 있었습니다.

미국 문화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성공 공식’에 끼워 맞추기가 어렵게 합니다. 인종, 배경, 성향이 다양한 사회에서 개인의 속도를 존중하게 되고, 서로를 쉽게 판단하거나 넘겨짚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한 단면으로, 직장 동료의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흔합니다. 나이를 잘 알지 못하니 ‘이 나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식의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서도 한결 자유롭습니다. 덕분에 각자의 시간표에 따라 쫓기지 않고 자신의 경력을 만들어갈 여유가 생기는 것이죠.

나아가 누구나 인생에서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늦춰야 할 때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가족을 돌봐야 하거나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서로 응원하게 됨니다.

누군가 왜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느냐고 묻거든 “지금도 좋습니다.” 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