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하는 개발자
완벽한 영어보다 중요한 것
미국 대학 시절, 유난히 외국계 테크 기업의 기술 면접을 잘 통과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실력이 다른 친구들보다 유별나게 뛰어나거나 남몰래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진 않았고, 그저 운이 좋거나 원래 코딩 테스트에 강한 타입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 친구에겐 분명한 강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영어를 훨씬 잘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객관적인 영어 실력은 초등학교 때 이민을 온 제가 더 나았습니다. 발음도, 어휘도 훨씬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완벽한 문장을 고르느라 늘 입을 닫았고, 그 친구는 투박한 단어로도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해냈습니다. 현장에서 영어를 정말 ‘잘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친구였습니다.
기술 면접의 목적은 직무 역량 검증이지만, 그 지식은 결국 언어를 통해 전달되어야만 의미를 가집니다. 머릿속에 아무리 완벽한 해결책이 있어도 화면 너머의 면접관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면접관에게 가닿지 못한 지식은, 아예 모르는 것과 똑같이 평가받습니다.
조용히 정답만 적어내는 완벽한 코드보다는, 사고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소통 능력이 결과를 가릅니다. 그 친구는 코딩을 압도적으로 잘한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면접관에게 최선을 다해 전달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어’는 대단한 어휘력이나 원어민 같은 발음이 아닙니다. 투박하더라도 기꺼이 내 생각을 꺼내놓는 태도입니다. 저는 일찍부터 미국에 살았으면서도 그 태도를 갖추지 못했고, 그 친구는 뒤늦게 유학을 왔으면서도 그 태도가 있었습니다.
영어를 잘한다는 건 결국, 내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릇을 가지는 일이었습니다.